개봉 당시 많은 관객들에게 충격과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영화 왕의 남자를 기억하시나요? 그 당시에 굉장히 파격적인 영화로 알려져 있는데요. 왕의 남자 정보 및 등장인물과 줄거리 및 역사적 배경에 대해 순서대로 이야기하며 당시를 회상하고 추억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이 영화를 고르게 되었습니다.
왕의 남자 정보 및 등장인물
2005년 12월 29일 개봉한 왕의 남자는 드라마 장르의 영화이며, 감독은 이준익 감독으로 현재까지도 감독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영화입니다. 개봉 당시 많은 충격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던 동성애 코드가 들어가 있었고 심지어 시대적 배경이 조선시대였기 때문입니다.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을 살펴보면, 감우성, 정진영, 강성연, 이준기, 유해진 등 지금은 유명한 배우들이 많이 출연했지만, 당시의 관객들에게는 감우성, 정진영 외에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다고 얘기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특히 이준기의 경우 이 영화로 얼굴을 알리게 되었으며, 여자처럼 예쁜 외모의 남자 배우라며 단번에 스타자리에 앉게 됩니다. 이 영화는 천만관객을 달성한 영화로 굉장히 큰 인기를 얻었으며 지금도 천만관객영화를 얘기하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줄거리
연산조 남사당패에 있던 장생(감우성)은 양반들에게 휘둘리는 것이 싫어 한양으로 상경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친구인 공길(이준기)과 함께 가게 됩니다. 워낙 재주가 좋았던 장생은 전과 같이 한양에서도 이름을 떨치며 놀이패를 이끌게 됩니다. 하지만 이 놀이패의 공연은 당시의 왕인 연산군(정진영)을 희롱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 소문은 퍼져 결국 의금부에 잡혀가게 됩니다. 의금부에서 심문을 받던 중 상황을 모면하려 장생이 나서 왕을 웃겨보겠다고 나섰지만 그 상황에서 왕을 웃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위기에 처하는데, 이때 공길이 나서 연기를 보이자 이를 본 연산군이 웃음을 짓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공연을 하게 됩니다. 이후로도 공연이 마음에 든 연산군은 이들이 궁에 거주면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거처까지 마련해 줍니다. 그렇게 궁에서 다양한 공연을 선보이게 됩니다. 공연의 내용들은 대부분 탐관오리들의 비리를 풍자하는 내용이었는데 때문에 관리들은 놀이패가 마음에 들지 않고 공연이 불편하지만 연산군은 공연마다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공연의 반응이 싸늘한 것을 눈치챈 연산군이 관리 한 명을 지목하여 마치 비리를 저지른 본인의 얘기 같아 웃지 않는 거냐고 얘기하며 그 관리에게 형벌을 내립니다. 이후부터 공연 때마다 관련된 사람들에게 형벌을 내리는 연산군을 보며, 연산군의 총애를 받고 있는 장생(강성연)은 궁을 떠나려 하고, 연산군에게 연민을 느낀 공길은 고민 끝에 궁에 남게 됩니다. 이후로도 계속된 연산군의 횡포에 궁에서는 놀이패를 쫓아내려는 계획을 세우게 되고, 공길은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이때 장생이 대신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장생은 감옥에서 나오게 되었지만 도망가는 것이 아닌 궁 한가운데서 줄타기 놀이를 하며 왕을 희롱하였고 이를 들을 연산군은 장생을 잡아 형벌을 받게 하고 감옥에 가두게 됩니다. 이런 모습들을 계속 봐야만 했던 공길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왕의 앞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하고 왕은 이에 충격을 받아 연회로 마음을 치유받으려 합니다. 하지만 연회를 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장생을 풀어주고 줄타기를 시킵니다. 그 모습을 보던 공길도 줄타기에 함께 하게 되고, 그 순간 반란이 일어나 반란군들이 궁에 들어오는 모습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역사적 배경
영화의 배경은 조선의 제10대 왕인 연산군이 재위하던 시기입니다. 연산군은 조선의 9대 왕인 성종의 첫째 아들로 태어나 적장자로서 수업을 받으며 자랐으며, 어머니는 성종의 첫 번째 후궁이었으며 성종의 총애를 받고 연산군을 가지며, 비로 책봉되어 왕비가 되었다. 연산군은 성종의 사망 후 자연스레 왕의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당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사치를 즐기며 국고의 사정이 나빠지던 때였습니다. 또한 자신의 어머니가 다른 후궁들의 모함으로 궁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돌아가시게 된 것을 알게 되며 폭정은 더더욱 심해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신하들은 참지 못하고 폐위하려는 정변을 계획했고 중종반정이 일어나게 되면서 폐왕 된 후 강화도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시기는 아마 연산군의 재위시절 중 마지막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워낙 많은 추측이 많았던 왕이기에 현재에는 자극적인 내용으로만 알려지는 왕이 아닌가 싶습니다.